문화일보 "아버지, 祖國 그리워했는데…국군포로 처우 부끄럽기만"

[기사제목] : "아버지, 祖國 그리워했는데…국군포로 처우 부끄럽기만"

"아버지, 祖國 그리워했는데…국군포로 처우 부끄럽기만"

유엔찾아 북한내 국군포로 실상 알리는 손명화 가족회 대표 

아버지는 北에서 노예 같은 삶 

신분 대물림 가족도 차별 처벌 

묘파서라도 고향 묻어달라 유언 

탈북 8년만에 유골 모셔왔지만 

오빠 여동생은 수용소 끌려가

아버지가 그토록 오고 싶어 했던 조국은 폐허 더미 위에서 10대 강국으로 발전했지만, 국군 포로와 그 유가족에 대한 처우는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6.25전쟁 71주년을 앞두고 미국 워싱턴과 뉴욕 유엔 본부를 방문, 국제 사회에 북한 내 국군 포로들의 상황에 관심을 가져 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손명화(59사진) 6 25 국군포로가족회 대표는 21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이 밝히며, 국군포로들은 북한에서 평생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 손 대표는 현재 워싱턴 일정을 마치고 뉴욕에 있는 유엔본부 16개 한국전쟁 참전 회원국 대표부를 방문, 한국군 포로의 상황에 대해 알리고 있다.

특히 손대표가 최근 출간한 침묵의 43호 라는 책을 영어로 번역해 배포하며 관심을 호소하고 있다.

 그는 또 유엔 내 북한 대표부도 찾아 한국군 포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북한 정권에도 항의할 것 이라고 밝혔다.

  아버지는 나라가 위험에 처했을 때 국가의 부름을 받고 목숨을 걸고 조국을 지키겠다고 참전했다가 포로로 잡혀 평생 북한에서 탄광, 광산, 임목에서 생지옥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손 대표는 이 같은 고통이 국군포로 본인에게만 그치지 않고, 신분이 대물림돼 그 가족들도 연좌제를 통해 차별과 처벌을 받았다고 말했다.

 지난 2005년 탈북한 손 대표는 8년에 걸친 노력 끝에 북한 땅에 묻힌 아버지의 유골을 한국으로 가져오게 된 경위도 설명했다.

 아버지가 눈을 감을 때 내 묘라도 파서 고향에 묻어 달라 고 했습니다.

국군포로들은 한결같이 자기가 총 들고 지켜낸 조국, 그 조국이 그리워 눈을 감을 때마다 자녀들에게 고향에 꼭 묻어 달라고 말해요.

 저는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어 2013년 아버지 유해를 대한민국에 모셔 왔습니다.

 손 대표 아버지의 유해는 한국에 온 지 21개월이 지나고 난 2015년, 국립대전 현충원에 안장됐다.

손 대표는 하지만 한국에 아버지 유해가 왔다는 뉴스가 대대적으로 보도된 이후 북한에서 오빠와 여동생, 조카들이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갔어요.

아버지 유해와 산 사람을 결과적으로 바꾼 것이나 마찬가지였어요라고 말했다.

손 대표는 최근 유엔인권이사회 산하 노예문제 특별보고관과 고문문제 특별보고관, 강제실종실무 그룹(WGEID) 등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진정서에서 북한에 포로와 전시 납북자의 생사 여부를 밝히고 한국의 가족들과 연락할 수 있도록 허용하며 한국에 무사히 돌려보낼 것을 요구했다.

2014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는 최종보고서에서 한국전쟁 정전 당시 8만 2000명의 국군 포로가 실종됐으며, 이 가운데 5만~7만 명 정도가 포로로 억류된 채 한국에 복귀하지 못한 것으로 추산했다.

국방부는 이 가운데 1994년 조창호 중위를 시작으로 2010년까지 모두 80명의 국군 포로가 탈북해 한국에 귀환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북한에서 한국에 돌아온 국군포로 유해는 모두 7위이다.

박현수 기자